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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당신의 직업관은 무엇입니까?

by 작은 종 2011. 9. 21.
취업·인사포털 인크루트(www.incruit.com)가 시장조사 전문기관 이지서베이(www.ezsurvey.co.kr)와 공동으로 전국 4년제 대학교 재학생 1천48명을 대상으로 ‘일하고 싶은 기업’을 조사해 20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대학생이 꼽은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 삼성전자가 8년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여전히 높은 인기를 과시했습니다. 

그런데, 이 조사에서 눈에 띄는 점은 대학생들이 어떤 이유로 기업들을 선호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1, 2위를 차지한 삼성전자와 국민은행의 경우 만족스러운 급여와 투명하고 공평한 보상제도(28.4%, 23.1%)가 첫 손에 꼽혔습니다. 대한항공은 일, 업무뿐 아니라 삶을 위한 가치 존중(20.3%)이 주된 이유로 선택되었으며, NHN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기업문화와 동종업계와 지역사회에서 선도기업의 이미지, 성장가능성과 비전(20.4%) 등의 이유가 고르게 나타났습니다. 또한 포스코의 경우에는 '만족스러운 급여와 투명하고 공평한 보상제도'(22.2%),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는 '성장가능성과 비전'(24.2%)이 선택 이유가 되었습니다. 현대자동차와 신한은행은 '만족스러운 급여와 투명하고 공평한 보상제도'(30.0%, 17.2%)가, 한국전력공사는 유일하게 '안정성(낮은 인력감축 위험 및 확고한 수익기반 등)'(48.1%)이 손꼽혔습니다. 

이런 내용들은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이 어떤 직업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의 선호도 이유의 공통점은 만족스러운 급여, 안정성 
그리고 성장가능성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안정된 생계를 위한 직업관에 치우쳐 있음을 보여주지 않나 진단해 봅니다.
오늘날 불투명한 미래, 불안하기 짝이 없는 세계경제와 거기에 더 큰 타격을 입고 있는 한국경제,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의 격차, 소유에 따른 불평등한 대우 등은 안정된 생계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쪽에 치우친 직업관으로는 건강한 삶을 살 수 없기에 이상적이고 건강한 직업관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취업하기조차도 어려운 시기에 직업관을 논하는 것이 너무 이상적인 것이 아니냐는 몰맨소리도 들을 수 있겠지만 건강한 직업관을 가질 때, 자신의 직업에 가치와 의미를 갖게 되고, 자부심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직업관은 이렇게 변천 되었습니다.
1) 생업으로서의 직업관
  과거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업활동을 통해서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을 생계의 수단인 생업(生業)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특히, 귀족사회나 봉건사회에서는 신분제사회로서 노예나 천민들만이 힘든 노동에 종사하고, 소수의 귀족들은 한가롭고 호화롭게 살아가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귀족층은 생산적인 노동에 종사하지 않는 유한계급이었고, 이로 인해 생산적인 노동에 종사하는 노예나 천민을 천시하는 노동관과 직업관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일이나 노동이란, 생업으로써 천민이나 상민들에게만 주어지는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노동천시 사상이 싹트게 된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시대의 문헌에서도 노동은 고통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의 생산적인 노동은 주인을 위해 거의 강제 노역을 해야 했던 노예들의 몫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노동을 고통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2) 신분과 사회적 지위로서의 직업관
 신분과 사회적 지위로서의 직업관은 생업으로서의 직업관과 역사적인 맥을 같이 한다. 생산적인 노동이 주가 되었던 고대 사회나 봉건사회에서 직업을 갖는 사람들은 상민이나 천민이었고, 이로 인해 직업은 생업으로서의 의미만을 강하게 지니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이러한 생업은 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몫이었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낮은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징표이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신분제 사회였던 고대사회나 봉건제 사회에서는 직업이 곧 개인과 가족의 신분을 말해 주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직업 선택은 신분에 따라 엄격히 제한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봉건적인 직업관은 바로 신분에 따라 직업이 정해졌던 신분제도에 그 원천이 있는 것입니다.

3) 소명(召命)으로서의 직업관
 고대 사회나 봉건제 사회에서 형성된 노동천시사상이나 직업의 귀천의식이 약화된 것은 루터(Luther)나 칼뱅(Calvin)에 의해 주도된 종교개혁의 결과였습니다. 특히 칼뱅은 직업을 하나님의 소명으로 규정함으로써 전통적인 직업관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종래에는 생산적인 노동이나 경제적 소득과 대가를 목적으로 하는 노동을 부정적으로 인식해 왔었으나, 칼뱅은 '하나님이 모든 개인은 직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부르셨다'는 소명으로서의 직업관을 새로이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직업이 무엇이든지 직업활동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길이며, 나아가 직업에서의 성공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증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산업화의 초기 단계에서 새롭게 성장하고 있던 당시의 도시상공업자들은 자신들의 직업적 활동을 하나님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직업적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 아니라 근검, 절약, 정직 등과 같은 청교도 윤리를 생활화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싹을 키우고 산업사회 문명을 개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4) 자아실현의 수단으로서 직업관
 오랫동안 사람들은 직업활동에 대해 단순히 생존과 생계 유지의 수단으로 생각하거나, 자신의 신분에 따라 주어진 운명이라는 식의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관념을 가지고 살아오다가, 종교개혁과 함께 나타난 소명의식으로 인해 사람은 누구나 노력과 능력에 의해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는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관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동물이나 식물과는 달리 본능 외에 자아의식을 가진 존재이므로 신체적인 욕구나 물질적인 욕구만을 가지고 의미있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인간이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아의식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을 인격적, 사회적, 문화적 욕구를 함께 지닌 정신적 존재라고 일컫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일과 직업을 통해서, 물질적인 보상 못지 않게, 그 일로 인한 보람을 얻음으로 계속해서 일이나 직업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씨를 뿌리고 무더위 속에서 여름 내내  가꾸어 온 농작물이 자라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흡족함이라든지, 자신이 공장에서 만든 상품이 소비자들에 의해 애지중지 사용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만족감 등은 일을 해서 버는 돈보다 더 소중한 보람인 것입니다.
이처럼 직업인들이 자신의 일을 통해서 성취와 창조의 보람, 타인에 대한 봉사의 기쁨 등을 누리고 있다고 했을 때, 그런 보람이나 기쁨이 바로 일을 통한 자아실현인 것입니다.
생계수단으로서의 직업관이나 신분과 지위로서의 직업관이 크게 약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자아실현과 사회 참여 및 봉사의 기회로 인식하는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직업관을 필요로 합니다.

이러한 직업관들은 어느 정도 서로 상응하며 나타나고 있습니다만, 아쉽게도 오늘날 대학생들의 직업관이 생계수단으로서 인식되며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직업관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고통을 감수하고 있다는 노동관을 갖게 되어 하루 하루 힘든 시간들을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소명으로서의 직업관이나, 자아실현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직업관을 살펴보고 우리 젊은이들이 건강한 직업관을 형성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돈은 필요한 것이고, 유용한 것입니다. 모든 젊은이들이 좋은 직장에서 넉넉한 급여를 받았으면 합니다. 그러나 그 물질적 보상보다 더 큰 보람과 기쁨을 주는 자아실현을 이루어가는 행복한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